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컵처럼, 아주 고요하고 무덤덤한 하루의 단편
나는 책상 위,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. 어제 주인이 마시고 간 차가루가 바닥에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, 컵 안은 텅 비어 있었다. 아침부터 저녁까지, 주인이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, 종이가 넘겨지는 소리, 작은 한숨 소리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. 나는 가만히 그 모든 소리들을 들었다.
때로는 주인이 잠시 나를 쳐다보았지만, 그것뿐이었다. 다시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. 나는 아무런 의미 없이 놓여 있었다. 어떤 기대도, 어떤 변화도 없이. 그저 책상 위의 일부로서, 시간의 흐름을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. 오늘은 나에게 어떤 물방울 하나도 내려오지 않았다.